책을 읽어요

꼭 한번 가보고싶다. "위저드 베이커리 - 구병모"

초희_ 2018. 5. 14. 17:47
위저드 베이커리
국내도서
저자 : 구병모
출판 : 창비(창작과비평사) 2009.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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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이런 베이커리가 있었으면..."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한 생각이다. 정말로, 마법사가 운영하는 베이커리가 있었다면. 물론 나는 그 제품을 이용하진 않았을 것 같다. 나는 걱정이 많은 소심쟁이니까. 하지만 한번쯤 방문은 했을 것 같다. 위저드 베이커리. 가게 이름부터가 완전 끌린다.

이 책은, 소설책임에도 불구 내가 세 번 이상 읽은 책이다. 항상 책장에 꽂혀 있는 이 책은 내가 심심할 때나 우울할 때, 어딘가에 집중이 안될때마다 꺼내 읽는 책이다. 마치 찰리와 초콜릿 공장처럼말이다. 마음을 간질간질하게 만드는 뭔가가 담겨있는 이 책은 마법사가 쓴 책인건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랑스럽고 멋지다.


곰보빵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갓난아기의 간을 말려서 빻은 가루를 넣은 빵, 티티새의 똥을 얇게 펴 바른 비스킷에 까마귀의 눈알을 우려 만든 시럽을 바른 웨이퍼,  젤리처럼 생긴 고양이 혓바닥 3종 세트, 라푼젤의 머리에서 떨어진 비듬을 모아 만든 모닝 롤 등 작가의 상상력이 매우 돋보이는 위저드 베이커리의 메뉴들은 참 사랑스럽다. 페이지마다 더 다양하고 다이나믹한 메뉴들이 소개되는데,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꼭 읽어보시길 바란다.


책의 관점은 평범한 남자아이의 관점이다. 아니, 평범한가? 좋아하지도 않는 빵을 매일 사야만 하고 집엔 아무도 없고, 집에 아무도 없길 바라고, 자길 벌레취급하는 새엄마와 그 딸과 같이 살고 있고, 여섯살때 친모에게 버림을 받았고, 이복동생을 성폭행 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평범한 남자아이이다. 평범하길 바라는 남자아이. 평범하고 싶은 남자아이.. 책 속의 그 아이는 담담해보여서, 담담한 척 노력하는것이 보여서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아팠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땐 몰랐다. 그냥 불쌍한 아이구나. 와, 빵집 메뉴봐. 작가 창의력이 대단한데? 라는 생각이 그쳤다. 두번 째, 세번 째, 읽을 때 마다 아이의 고통이 느껴졌다. 나 많이 아파. 그런데 표현을 할 수가 없어. 표현을 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거든. 그래서 난 괜찮아. 괜찮은 척 살거야. 그래야 하니까. 그 아이가 말을 더듬는다는 자체가 괜찮다는게 아닌건데. 그 아이의 부모가 볼 땐 그 말 더듬이 자체도 재수가 없었나보다. 

마법사의 오븐속에서 살며 그 아이는 언젠가부터 말을 더듬지 않게 된다. 그 안에서 치유받았다는걸 표현하고자 했던 것 같다.


위저드 베이커리의 메뉴 중 타임 리와인더가 있다. 말 그대로 시간을 되돌려주는 것이다. 간절히 되돌리고 싶은 시간을 마음속으로 설정 한 후, 한입 크기의 머랭 쿠키를 입속에 넣고 부순 다음 치아나 혀끝에 닿은 종이를 밖으로 끄집어내 확인하면 그 종이에 자기가 원하던 날짜 혹은 시각이 붉은 글씨로 적혀 있단다. 아무에게나 만들어주지않으며 천문학적 가격을 요해 상담 후에나 제작이 가능한 이 쿠키. 처음엔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시간을 돌려서 8년전 그 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돌아가 붙잡고 싶었다. 아니라고, 전혀 그런 것 아니니까 그러지 말라고. 도망이라도 가라고 얘기하고 싶었다. 허구의 책 속의 아이템에 내 진심을 투영하고 있었던 거다. 간절했던거지 처절했고. 어렸고 여렸고 상처받았고 상처줬고. 엎질러진 물이지만 다시 돌리고 싶었고, 죽을 죄를 지었지만 사죄하고 싶었다. 위저드 베이커리가 현실에 존재하는 것 마냥, 타임 리와인더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 처럼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 마법사가 내 진심을 알았다면 시간을 돌려줬을까?

지금은, 시간을 돌려준다고 해도 고맙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라고 얘기할거다. 그래야 하는거란 생각이 든다.


책의 마지막에 나오는 메뉴는 남자아이의 새엄마가 남자아이를 모델로 주문한 부두인형이다.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부서진 타임 리와인더를 입속에 넣은 남자아이. 책의 뒷면엔 Y/N의 경우로 두 가지의 이야기가 있다.

시간을 돌린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로 짜여진 두 가지 이야기. 나에게 타임 리와인더가 있다면... 이란 전제로 상상할 수 있는 이야기이겠다.


가볍게 읽히지만 여운을 남기는 이 책. 자신에게 위저드 베이커리의 어떤 메뉴가 필요한지 궁금하다면 한번 쯤 읽어보는걸 추천한다.